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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가나아트: 한국 현대 미술 산업화의 전설과 그 40년 역사 

Lee Ho-jae Gana Art : 40 ans d’histoire de l’art contemporain et la légende du marché de l’Art coréen 

한-불 예술시장 전설

“미술 산업화에 자부심”

시장 키우려 서울옥션 매각 추진

평창동 예술인마을로 만드는 게 꿈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가나아트 40주년 기념전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3.2.21. zitrone@yna.co.kr

한불통신-ACPP)  “40년이 지났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네요. 미술이라는 아이템 자체가 산업화하는 과정에 가나아트와 서울옥션이 있었다는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랑 중의 한 곳인 가나아트가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이호재 회장은 29살이었던 1983년 가나화랑이라는 이름으로 미술계에 뛰어든 뒤 40년 여정을 담담히 회고했다.

‘가나’라는 이름은 한글의 가나다라 중 맨 앞의 두 글자에서 딴 것이다.

해외 시장을 위해서는 받침이 없는 이름이 좋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가나아트의 모델은 프랑스 남부 생 폴 드 방스에 있는 사립미술관 매그 파운데이션이었다.

이 회장은 역시 화랑에서 출발해 페르낭 레제, 호안 미로, 알베르트 자코메티 등을 유명 작가로 키워내고 미술관이 된 매그 파운데이션처럼 자신도 작가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엔 현대화랑과 진화랑, 동산방화랑 등 당시의 유명 갤러리들이 버티고 있던 화랑계에서 신생 화랑이 선뜻 유명 작가에게 명함을 내밀기가 쉽지 않았던 상황도 작용했다.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가나아트 40주년 기념전에 출품된 김환기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3.2.21. zitrone@yna.co.kr

처음 계약한 작가는 소산 박대성이었다.

1983년 당시 한 달에 30만원씩 주기로 하고 일종의 전속 계약을 맺은 박대성은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한국 작가로는 첫 개인전을 여는 등 유명 작가가 됐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화랑으로 돈을 번다는 게 미안했어요.

다른 식으로 뭘 하면 좋을까 하다 작가 전속 제도를 생각했죠.

제 나름대로 미술계에 마음의 빚이 있어서 돈이 생기면 작가를 한 명 한 명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박대성 작가를 알게 됐는데 그 역시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동료의식 같은 게 느껴졌어요.

박대성 작가가 LACMA 전시 외에도 미국 네 개 미술관에서 순회전을 하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임옥상도 대형 작품을 할 수 있는 작가인데 이런 작가들이 제 옆에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오수환, 고영훈, 황재형 등 다른 귀한 작가들도 많이 만났죠.”

스위스의 유명 화상 에른스트 바이엘러와의 만남도 이 회장의 사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바젤 아트페어의 창시자이기도 한 바이엘러는 미국에서 만난 이 회장에게 자신의 사업 비결을 들려줬다.

“좋은 그림이 있으면 작고 작가 작품은 팔고 그 돈으로 제가 키우고 싶은 젊은 작가의 대표작을 사라고 하더군요.

명분도 얻고 실리도 얻게 될 거라고 하면서요.

그 당시 바이엘러가 소개해 준 작가가 안젤름 키퍼 같은 작가였어요.

이런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좋은 작품을 찾을 수 밖에 없었고 그게 결국 저에게도 도움을 줬죠.

운도 좋았어요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첫 고객이었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만날 기회가 있어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화랑으로 승승장구하던 때 1998년에는 우리나라 첫 미술품 경매사인 서울옥션을 세우며 또 한 번 변화했다.

계기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였다.

“당시 시장이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죠. 화랑 주인들이 화랑에서 고객을 기다리지 않고 도망 다녔어요.

옛날에 산 그림 다시 팔아달라고 할까 봐서였죠. 그래서 만든 게 서울옥션이었어요.”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가나아트 40주년 기념전에 출품된 김환기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3.2.21. zitrone@yna.co.kr

서울옥션 외에도 가나아트는 미술의 산업화에서도 여러 족적을 남겼다.

화랑이 개인 사업체로 운영되던 1990년에는 가나화랑을 법인으로 바꿨고 1997년에는 아트 상품을 판매하는 가나 아트샵을 열었다.

사업 마인드로 한 것은 아니고 IMF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 이 회장은 털어놨다.

서울옥션의 최대 주주이기도 한 이 회장은 최근 추진 중인 서울옥션 매각과 관련해 시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옥션이 설립 이후 2019년까지 20년간 작품을 1점이라도 산 사람이 6천여명이었어요.

그러던 것이 2020년과 2021년에는 한 해에 1만명씩 신규 고객이 유입됐죠.

신규 고객이 많이 들어오면서 시장이 많이 바뀌었어요.

또 최근 국제적인 갤러리들이 많이 서울에 진출했죠.

서울옥션이 그동안 시장의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면 이제 이 시장을 더 키워야 하고 그러려면 우리 힘으로는 부족하고 대자본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옥션 매각 추진도 이런 차원이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시장이 가라앉고 있으니 너무 성급하게 추진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이 회장은 같은 맥락에서 미술 시장의 산업화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미술시장은 한정된 외부 요인에 의해 휘둘리는 시장이었는데 이를 벗어날 호기가 온 것 같습니다.

내년부터는 시장 규모가 더 많이 커질 것으로 봅니다.

지금까지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취향에 따라 구매했다면 앞으로는 그림을 자산으로 보고 돈이 되는 걸 보고 사는 게 일반화되면서 재미있는 현상이 많이 벌어질 것 같아요.”

이 회장은 현재 화랑 사업은 큰아들인 이정용 대표에게, 경매사업은 동생인 이옥경 대표에게 맡기고 자신은 가나아트센터가 있는 평창동 일대를 예술인마을로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평창동에 프랑스의 파리국제예술공동체를 모델로 한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평창동에 매그 파운데이션 같은 미술관을 짓고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예술마을을 만들고 싶습니다.

애초 인사동에서 평창동으로 가나아트센터를 옮긴 것도 매그 파운데이션 역시 예술촌에 있기 때문이죠.

미술관을 짓기 위해 가나아트재단을 만든 게 2014년입니다. 10년이 되는 해에 재단 이름으로 전시장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zitrone@yna.co.kr

(끝)
#이호재, #가나아트 #서울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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